기금넷 공식사이트 - 재경 문답 - 9·18사변 이후 장학량의 동북군은 어디로 갔는가? 최종 결과는 무엇입니까
9·18사변 이후 장학량의 동북군은 어디로 갔는가? 최종 결과는 무엇입니까
동북왕 장작림이 황구툰에서 일본의 폭격으로 죽은 뒤, 동북을 장악한 장학량은 그의 휘하에 약 30만 명의 동북군을 두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9·18사변이 일어나자 30만명이 넘는 동북군이 모두 관 밖에 주둔하지 못하고 오히려 장설량과 함께 관 안에 주둔한 동북군은 20만이 넘었다. 동북3도에 10만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9·18사변을 일으킨 일본 침략자들
그러므로 갑자기 9·18사변을 일으킨 일본 침략자들 앞에서, 동북군의 전력은 동북 3성은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고, 동시에 장개석과 장설량의 무저항 명령과 맞물려 동북 30만군은 분열되었다.
1부에서는 동북군 주력군 대부분이 무저항 명령을 수행했다. 북중국에서는 여전히 뒤에 남아 일본과 싸워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동북군 중 이 부대는 약 20만명의 병력을 보유한 동북부 최대의 정예부대이기도 하다.
동북군
당황해서 도망치는 동북군도 있고, 용감히 저항해야 하는 동북군도 물론 있고, 피비린내 나는 동북군 중 일부는 이를 거부했다. 장개석과 장설량의 무저항 명령을 받아 동북 지역의 저항 전쟁에 계속 머물렀다. 이 집단의 선두에는 마잔산(Ma Zhanshan), 리두(Li Du), 황선성(Huang Xiansheng) 등이 있으며, 이들은 현장 저항을 주장하는 동북 3성 대표이기도 하다.
동북항일전쟁 초기 항일을 주장한 동북지원군 장병은 대부분 동북군 출신이었다. 참전한 동북군 대원은 2만여 명이었다. 항일의용군에서. 동시에 이들은 14년간의 항일전쟁을 지속한 동북항일동맹의 중요한 일원이기도 하다. 이 사람들은 또한 중화민족의 중추이다.
마잔산
세 번째 그룹도 숫자가 가장 적습니다. 이 그룹의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기를 꺼리고 장설량을 따라 세관 밖으로 대피합니다. 그들은 일본의 침략에 저항할 용기가 없지만 동시에 그들의 양심은 온전하며 반역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동북군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마지막 부분이자 가장 비열한 부분은 반역을 선택하고 적에게 항복하여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일본군은 중국 동북부를 점령한 뒤 9.18사변을 일으키고 소위 괴뢰만주국을 세웠다. 꼭두각시 만주국에는 만주국군이라는 꼭두각시 군대도 있었습니다. 소위 "만주국군"이라고 불리는 이 군대는 1932년 창설 당시 약 85,000명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중 거의 80,000명이 원래의 동북군에서 개조되었습니다.
일본 침략자들이 획득한 동북군 무기
즉, 8만 명에 가까운 동북군 병사들이 적에게 항복하고 반역자가 된 셈이다. 반역 세력의 이 부분은 Xi Qia, Yu Zhishan, Ling Sheng, Zhang Haipeng, Zhang Jinghui 및 기타 전 북동부 고위 관리 및 군 장교가 이끌었습니다. 이들 역적군은 주나라의 탄압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일본 침략자들의 매와 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침략자들의 전면적인 중국 침공과 함께 세관 구역에 들어와 항일 운동을 진압하는 처형자가 되기도 했다.
꼭두각시? 만주국군?
저항하지 않고 장설량을 따라간 20만명이 넘는 동북군이 관문으로 철수한 것은 끝이 좋지 않았다. 영토 손실로 인해 무기와 장비, 군수품, 심지어 식량, 임금, 무기까지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부대의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관북군은 장개석의 최고의 무기가 되어 적군을 포위, 진압하고 반체제 세력을 제거했다.
장설량과 동북군 장수
특히 홍군이 포위되고 진압되는 과정에서 동북군은 계속해서 패배했고 그 부대는 끊임없이 도살당했다. 고향인 동북을 되찾지 못하고 내전으로 계속 피해를 입으면서 동북군 내부의 불만은 더욱 커져 결국 '시안사변'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안 사변'의 평화적 해결로 장학량은 투옥되고, 지도자를 잃은 동북군은 장제스의 차별화, 상생과 맞물려 엉망이 됐다. , 분할하여 동북군을 5개 성·구에 분산시켰다. 더 이상 부대가 아닌 동북군은 결국 항일 전장에서 대부분 소모됐다. 민국시기 중국의 중요한 정치군사집단으로서 동북군 역시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