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넷 공식사이트 - 경제 뉴스 - 징희 노승: 저승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동기

징희 노승: 저승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동기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중생의 본성은 매우 다르며 수행 과정에서 동기도 다릅니다. 대승보살 정신으로 측량하면 수행에 종사하는 중생은 대략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의 중생은 이 사바세계에서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겪었으며 매우 강한 혐오감을 느꼈다. 즉시 이 세상을 떠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토종 또 다른 유형의 중생이 있는데, 비록 그들이 이 세상에서 온갖 고통을 경험하고 고통의 본질을 보았지만 그들의 동기는 이전 유형의 중생들과 다릅니다. "타인의식, 자기 이익과 이타주의", 자신이 남을 구하는 정신. 그러므로 그들도 사하세계에 지치고 극락세계를 동경하면서도 단지 자유인이 되려는 마음은 없고 이 세상을 정토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정토를 수련하지만 지극한 자비심과 보리심을 계발하였기 때문에 극락세계에 도달하여 원만함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자항 방향으로 날아가서 소원을 따라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게다가 방금 언급한 것보다 동기가 더 넓고 더 고상한 유형의 중생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과 죽음의 고통을 무시하고 모든 중생을 구하고 구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입니다. 소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 그들은 지장보살의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갈 것인가?”처럼 두려움이 없는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보통 '대승보살'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극락세계에 가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사바세계의 방식을 따라 모든 중생을 위해 수행하고, 모든 중생이 제도될 때까지 모든 중생의 보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보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주지로 있는 절의 창시자인 조주(趙州) 스님이 이런 사람이다. 조주(趙州) 스님은 120세를 살았습니다. 어느 학자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노스님, 수행을 잘하고 공덕이 크시군요. 백년 후에는 어디로 가십니까?" 그는 단순히 “나는 지옥에 갈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학자는 의아해했습니다. “오, 당신은 그렇게 영적인 사람인데 왜 아직도 지옥에 가고 싶어합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너를 구원할 것인가?" 위의 세 가지 동기에 따라 '환생'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명상을 선택할 것인지 정화를 선택할 것인지 등 수행 방법의 선택에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자비심이 크고 의욕이 크며 감히 직접 책임을 지고 자기 욕심이 거의 없는 사람은 선 수행을 더 좋아하며, 정반대의 사람은 정토 수행에 적합합니다. 말세의 중생들은 기초가 얕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소심하고 고난과 피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정토수련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것에 어느 정도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세의 모든 중생 중에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사실 뿌리의 크기는 주로 그가 대자비심과 보리심을 계발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대자비심과 보리심의 지원으로 그는 보살의 길을 수행할 수 있고 모든 중생을 대신하여 감히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때 그는 왕생을 위해 정토를 닦을 의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의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하세계에 머물다. 삶과 죽음의 같은 바다에서 큰 자비를 지닌 사람과 큰 자비가 없는 사람은 삶에 대해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전자는 고통을 기뻐할 수 있고 후자는 비참함을 느낍니다. 수련생이 대자비(大慈悲)를 키우면 남을 위해 두려움 없이 칼산에 오르고, 불바다에 내려가고, 기름통에 들어가는 것을 서슴지 않을 것입니다. "Eagle Fighting Fire"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은디(Indhi)에서 수행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큰 산에 불이 붙고 많은 나무와 동물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보시고 마음속에 무한한 자비를 느끼셔서 꿩으로 변하셨습니다. 산으로 날아가서 해변에서 날개를 물에 담그고 불을 끄세요. 불이 이렇게 맹렬했는데 과연 꿩의 날개가 불을 끌 수 있을까? 그러나 석가모니부처님은 그런 인내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작은 힘이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대자비(大慈悲), 대의지(大念), 대용(大勇)의 구체적인 구현이자 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