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넷 공식사이트 - 주식 시세 - 연간 8억 수익을 내는데 '죽음 추구'만을 고집하는 '해피캠프'는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연간 8억 수익을 내는데 '죽음 추구'만을 고집하는 '해피캠프'는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기네스북에 등재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해피캠프' 역시 전성기를 지나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 '해피캠프'는 얼마나 인기가 있었나요?

그야말로 예능의 한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 인기 연예인, 예술가들이 무대에 설 기회를 찾고 있는지.

예능 출연에 거부감을 느끼는 실력파 배우 거유와 양조위도 예능에 출연했고, 주걸륜, 오춘 등 틈새 배우들도 예외는 아니다.

예능에 출연한 적 없는 주성치도 '해피캠프'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잉은 "새 앨범이 아니었다면 '행복캠프'에 출연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스타의 인기는 '해피캠프' 출연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 시장에 있었다. 더욱이 이 기간 동안 '행복캠프'에 출연한 스타들은 광고비를 받지 않았고, 여행비와 호텔비만 지원받았다.

'자유 매춘' 쇼에 연예인들이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이렇게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 결국 종영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방송 중단 뒤에 '행복캠프'는 어떤 행보를 보였는가? 아니면 누구의 케이크가 조작됐는가?

01.

1996년 후난경제TV는 '럭키 3721'이라는 프로그램을 출시해 매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번 예능은 더 이상 밋밋하고 센세이셔널한 진행 방식이 아닌, 게임과 함께 현장에서 게스트와 소통하며 다양한 게스트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참신한 방식 때문에 후난 사람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997년 후난TV와 망고미디어가 협력해 후난위성TV를 설립했다.

당시 방송국장이었던 웨이웬빈은 '럭키3721'의 인기에 큰 자극을 받아 내용과 친화적인 스타일 측면에서 여론을 강조하며 변신과 개편을 결심했다.

곧바로 '해피캠프'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럭키3721'의 길을 따라가겠다는 각오를 다졌지만 진행자 선택에 고민이 많았다.

웨이원빈은 당시 후난위성TV에서 '저녁뉴스' 진행을 하고 있던 대만에 갓 도착한 리샹을 주목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크고 가치도 매우 높았기 때문에 리샹에게 먼저 해보고 교체하고, 적합한 후보가 나오면 교체하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교체에는 꼬박 8년이 걸렸습니다.

대담하고 공격적인 웨이웬빈의 모습은 방송을 본 후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해피캠프' 역시 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많은 변화를 줬다.

특히 리샹의 남자 파트너는 리빙에서 하이보로 차례차례 바뀌었다.

파트너 변경 외에도 후난 위성 TV도 결정을 내리고 많은 돈을 썼습니다.

방송될 때마다 상금을 받아 시청자들을 이끌어가는 자극제로 활용될 예정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아직까지 컬러TV나 냉장고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가전제품이었지만 후난위성TV가 이를 내놓으며 인기가 급격하게 높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행복캠프'의 시청률은 급상승했고, 당시 리샹도 후난TV 1위 누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당시 리샹은 전성기였고, 외모와 체형 모두 최고 중 하나였다.

02.

시청률은 올랐지만, 이 사은품은 영원히 줄 수는 없습니다.

멈추는 것은 항상 다양성보다 열등합니다.

그리고 '행복캠프'는 한때 유행을 일으키며 주요 방송사들의 모방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동남TV는 '해피캠프'와 경쟁하기 위해 '해피100'이라는 프로그램도 론칭했다.

그들이 선사한 호스팅 라인업은 더욱 고급스러워져 광고주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를 주목하고 있는 다른 위성 TV 방송국도 있습니다.

이 업계에서는 인기가 있으면 즉시 수많은 모방이 이루어집니다.

사방이 포위된 '해피캠프'도 한때 난관에 봉착했다.

진행자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리샹과 남자 파트너도 차례로 바뀌었다.

당시 허지옹은 북경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뒤 CCTV에 입사해 '풍뎅이' 류춘연과 함께 '풍차' 칼럼 진행자가 됐다.

더욱 매력적이고 관련성을 높이기 위해 진행자는 이름을 바꿔야했고 허지옹도 '애벌레'로 바뀌었다.

당시 허지옹은 많이 미성숙했지만 진행 실력은 전혀 약하지 않았다.

후난위성TV 역시 리샹에게 적합한 파트너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젊은 허지옹은 꾸준한 진행 스타일과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연기를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방송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정통 후난성 창사 출신이다.

이에 따라 후난위성TV도 코너를 밀었다.

고향 방송국의 초대에 허지옹은 망설이지 않고 CCTV 탈퇴를 선택하고 후난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행복캠프' 진행을 하게 되면서 허지옹 역시 진행 경력은커녕 그런 경험도 전혀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중도 승려가 된 호스트가 호스팅 업계에서 다재다능하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잔뜩 긴장한 허지옹을 본 리샹도 "상관없어 그냥 따라오세요"라고 과감하게 말했다.

당시 그녀는 이미 '해피캠프' 무대의 다양한 루틴에 익숙했고, 이제 막 무대에 오른 허지옹을 데려오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 두 젊은 호스트가 힘을 합쳐 '행복캠프'를 살려내고 작은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03.

두 사람의 찰떡궁합으로 시청률은 오르는 것은 물론, 암묵적인 협력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행복캠프' 무대가 새롭게 떠오르는 황레이, 가오위안위안, 종한량을 맞이한 것도 이들의 암묵적인 협력의식 속에서였다.

비록 지금만큼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잘생긴 외모는 많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허지옹과 리샹의 성공으로 돼지사료 광고가 방송됐다는 인상도 반전될 전망이다.

CCTV의 '버라이어티쇼'에 버금가는 예능 프로그램이 됐다.

'행복캠프'의 성공으로 중국 내 예능 열풍이 불었다.

성공적인 변신에 나선 '행복캠프'의 포부는 이뿐만이 아니다.

시에나는 1999년 '영웅 방시우'로 인해 장웨이지엔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행복캠프'에 함께 출연하게 됐다.

이번 방송에서 허지옹은시에나의 활발하고 솔직한 성격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해피 패밀리의 또 다른 멤버 리웨이자도 무대에 등장했다.

'행복캠프'는 프로그램의 독특함을 반영하기 위해 오프사이트 인터랙티브 링크도 추가했다.

이에 로케이션 호스트인 웨이자도 그 기회를 살려 '행복캠프'의 호스트 중 한 명이 됐다.

세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해피캠프'도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됐다.

'행복대영캠프'는 국내 예능 프로그램 중 늘 상위권을 유지해 왔지만 후난위성TV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행복캠프'의 성공을 지켜보셨지만 그 이면의 노력을 외면하셨을 것입니다.

특히 웨이자는 당시 '행복캠프'에서 '나가서 인터뷰하고 체험하는 것'이 임무였는데, 영하 40도의 황야에 한 번 등장한 적도 있다.

세 사람으로 통칭되는 '철의 삼각지대'가 점점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바로 웨이자의 묵묵한 노력 덕분이다.

숲속의 나무가 아름답다면 바람에 쓰러지고, 해안에 쌓이면 물살이 거세지고, 군중은 그들을 거부할 것이다.

실력을 뽐낸 '행복캠프'는 국내 예능에서도 질투와 공격의 대상이 됐다.

많은 리더들이 불쾌한 비꼬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일부 지지자들과 반대 목소리도 섞여 있어 '해피캠프'는 계속될 수 있다.

04.

2000년에는 여성 진행자가 필요했던 프로그램이라 허지옹이 시에나를 추천했다.

당시 허지옹은 이렇게 활발한 사람이 진행자를 맡으면 방송, 특히 게임 부문에서 더욱 활력이 넘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진행자인시에나는 1회만 진행을 한 뒤 아쉽게도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연예계에 계속 남아 작은 역할을 계속하며 유명해질 기회를 찾는 것 뿐이다.

안타깝게 하차한시에나가 앞으로 '해피캠프'의 가장 빛나는 별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프로그램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후에는 허지옹, 리샹, 웨이가의 '철삼각형'이 지속적으로 출력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프로그램이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았지만, 찾아온 게스트들은 모두 핫하고 인기가 많은 아티스트들이었다.

주걸륜(Jay Chou), 알리사 치아(Alyssa Chia) 등이 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2002년,시에나는 다시 한번 '행복캠프'에 로케이션 호스트로 합류했다.

당시시에나는 아직 관객들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그녀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어려웠다.

출연할 때마다 대중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시에나는 다시 한번 '해피캠프'를 떠났다.

이와 함께 유예와의 인연도 드러났다.

당시 유예는 유명세를 탔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화상과 TV상도 수상한 배우였다.

한편, 류예와의 인연이 공개되면서 셰나의 연예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무대 속에서,시에나는 다시 한 번 변화의 기회를 얻었다.

2004년 리샹은 더 나은 발전을 위해 '해피캠프'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하고 혼자 베이징으로 떠났다.

리샹의 하차는 '해피캠프'에도 치명타를 입혔다.

리샹의 '행복한 캠프'가 없으면 외로움이 조금 더 커진다.

하지만 프로그램 제작진은 '대만 예능 버라이어티 쇼'를 레퍼런스로, 허지옹을 핵심으로 삼아 프로그램의 새로운 승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행복캠프'에 몸담은 허지옹은 철없는 모습을 버리고 순조롭고 꾸준한 진행자로 거듭났다.

후난위성TV의 주목을 받은 허지옹이 다시 한번 시에나를 초대했다.

웨이자와 시에나의 협력에도 불구하고 허지옹은 여전히 ​​한 사람에게 의지하며 리샹의 뒤를 쫓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사람이다.

진행자는 시청률 문제와 더불어 베가를 제외한 안정적인 여성 진행자가 부족한 점도 큰 문제라고 우려하고 있다.

시에나의 진행 스타일 때문에 아직도 시청자들에게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05.

2005년 7월,시에나는 '해피캠프'를 탈퇴했다.

공백기 때문인지,시에나는 10월에 다시 합류했다.

세 번이나 드나들었다를 반복한 셰나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잔혹한 출발이다.

2006년 '행복캠프'는 수렁에 빠졌고, 수정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후난 TV는 여론을 반영하기 위해 '행복한 호스트 통곡 작별' 라이브 콘서트도 개최했습니다.

허지옹, 웨이자,시에나가 모두 무대에 올랐다.

시청자 투표를 통해 '행복캠프'를 이어갈 1인이 선정됐고, 그 결과가 허지옹이었다.

이번에도 셰나는 리웨이자와 함께 다시 떠났다.

'행복캠프'에서 거듭된 좌절에도 불구하고시에나는 영화, 방송계에서도 기회를 얻었다.

'행복캠프'를 응원하는 사람은 허지옹뿐이지만, 다른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또한 '슈퍼걸'의 인기는 후난위성TV에게 '행복캠프'의 진행자에게도 장기예능의 물결이 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그 결과 '반짝이는 뉴앵커'가 등장했다.

'행복캠프'의 초반 성공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참가해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어하고 있다.

여기에서 진행된 장기자랑에서는 두해타오(Du Haitao)와 우신(Wu Xin)도 눈에 띄었고, 장펑(Zhang Peng)이 바짝 뒤따랐다.

장기자랑이 끝난 후 허지옹은 두해타오, 우신, 장펑을 데리고 '해피캠프'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장펑은 2회에만 등장해 예고 없이 교체됐다.

그를 대신한 인물은 셰나와 리웨이자였다.

이번 드래프트 활동을 통해 침체기에 빠졌던 '해피캠프'가 다시 살아났다고 할 수밖에 없다.

06.

'행복캠프'에 출연한 다섯 사람은 '행복가족'을 세우기도 했다.

이번 개정으로 '행복캠프'는 완전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며 정점을 찍었다.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프로그램 팀도 연예인 발표 비용을 직접 취소합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는 아티스트에게는 한 푼도 지급되지 않으며 여행비와 호텔비만 환불됩니다. .

돈이 없어도 '해피캠프'에 출연하기 위해 아티스트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예인 아티스트들은 팬층이 두텁기 때문에 이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판샤오쉬안은 한 번도 프로모션을 위해 본토에 왔지만 '해피캠프'에 출연하면 프로모션비를 아끼고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성기의 '행복캠프'에는 그런 능력이 있다.

당시 '해피캠프'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 인기 많다는 말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인기가 많은 연예인들도 '해피캠프'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일정이 너무 빡빡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아시다시피 베컴은 '해피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에 왔습니다. 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인물은 '해피캠프'에서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베컴의 호응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당시 '행복한 본영'은 CCTV의 춘절 갈라와 막연하게 비교됐다.

예술가들에겐 정말 힘든 일이다.

많은 인기 연예인들이 힘들지만 장걸은 시에나의 도움으로 단골 손님이 됐다.

'해피보이즈'에서 두각을 나타낸 장걸이시에나의 남자친구가 됐다.

이번 인연으로 장걸은 단골 손님이 된 것 같다.

연예계에서 장걸보다 오랫동안 '행복캠프'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허지옹, 셰나, 리웨이자, 두해타오, 우신, 리샹 등 6명 뿐이다.

2012년 '해피캠프'가 15주년을 맞았다. 프로듀서로서 롱메이도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해피캠프'는 연간 8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베이스캠프'는 결국 '전복'됐다.

07.

2013년에는 예능 '아빠 어디가'가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 게스트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해피캠프'를 찾았고, 초연은 5천만 명이 시청하며 '해피캠프'가 기네스북 기록을 직접 달성하게 됐다.

이때 누가 '해피캠프'를 얕잡아 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행복캠프' 역시 그 흐름을 따라가게 됐다.

'보이스 오브 차이나', '런!' '브라더스' 등 예능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행복캠프'는 다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행복캠프' 진행자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해피캠프'는 인기에서 돌연 인기로 바뀌었다.

2014년 TV 검독수리 페스티벌 시상식에서는 CCTV의 '국민얼굴' 강희와시에나가 같은 무대에 진행했다.

'행복캠프'에서는 '미쳤다'는 자신감이 있지만, 강휘 앞에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 같다.

강희는 “저와 평소에는 소통이 안되는 것 같아요.

이 문장은 시에나를 악플 폭풍 속으로 완전히 몰아넣었다.

2020년, '행복캠프'는 더 큰 위기에 빠졌다.

프로그램팀도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택했고, 과거 부활까지 흉내내며 ' 굳건히 친구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빛나는 뉴앵커'처럼 죽음의 부활은 없었고, 오히려 담담함에 당황스러웠다.

점점 낮아져가는 '행복캠프'는 더 나은 변신을 가져오진 못했지만 사고가 잦았다.

먼저 허지옹의 '지원선물' 사건은 폭풍을 몰고 왔고, 높은 감성지능을 지닌 좋은 이미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직후 리웨이자와 두하이타오의 지지가 뒤집혔다.

24년의 예능 프로그램이 이렇게 추악한 장면을 연출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2021년 '행복캠프' 전 회차는 시청률 0.59%, 전체 방송 순위 57위를 기록하며 종영됐다.

프로그램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때, 시각적인 피로감 뒤에는 '행복캠프'가 된다.

방송 중단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됐다.

썰물이 되면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는지 알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결론 :

사실 시대의 흐름과는 별개로 '행복캠프'의 쇠퇴 역시 '행복가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프로그램의 효과를 이용해 '가족 캐릭터'를 만들어내다 결국 팬들의 신뢰를 소모하게 됐고, 필터가 깨지면서 돈 버는 진면목이 드러났다.

'교통왕, 자본왕' 시대에 '해피캠프'는 더 이상 순전히 행복을 섬기는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