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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얀마는 몇 년도에 수교를 맺었나요?

미얀마는 1975년 5월 16일 남북한과 수교를 맺었다.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빈방문차 양곤을 방문하고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 아웅산 묘소에 헌화를 준비하던 중 폭발이 일어났다. 전두환 부총리 서석준, 이범석 외교부 장관 등 동행인 21명이 현장에서 사살됐다. 관두환과 그의 아내 이순자는 지각했기 때문에 가까스로 지옥에서 탈출했다.

나중에 망신을 겪은 미얀마는 폭탄테러가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고 결론 내렸다. 같은 해 11월 4일 미얀마는 분노하여 북한과의 국교 단절을 선언했다.

북한의 핵실험 폭발로 국교 재개가 연기됐다

최근 이란, 미얀마 , 북한과 미국의 다른 '눈가시'가 서로 교류하는 것은 미국의 봉쇄 정책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과 미얀마의 근접성은 서로의 장점을 보완하는 효과도 있다. 이는 양국이 원한을 비웃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얀마의 쌀과 에너지는 북한에 가장 부족한 자원이다.

태국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1995년 북한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식량난을 겪었다. 북한이 수년 동안 태국에 막대한 쌀 구입비를 갚아야 했기 때문에 태국은 북한으로의 쌀 수송을 중단했다. 어쩔 수 없이 북한은 역시 쌀이 풍부한 미얀마에 인력을 파견해 곡물을 구입하고, '식량외교'를 통해 양국 관계를 점차 개선해 나갔다.

태국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북한 화물선이 여러 차례 양곤항에 정박했다가 미얀마 쌀을 실어 돌아왔다고 밝혔다.

2000년 7월부터 미얀마와 북한 외교관들은 관계 정상화를 위해 방콕, 비엔티안, 하노이에서 수시로 접촉을 해왔다.

사실 지난해 초 양국 간 협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고, 몇 달 뒤 수교 재개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불행하게도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 폭발로 인해 국제적 비난이 일자 미얀마는 조심스러워졌고 양곤 계약 체결을 연기했다. 북한은 현재 150여개 국가와 수교를 맺고 있다. 미얀마와 수교를 재개한 이후 일본은 아직 수교하지 않은 아시아 주요 국가 중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