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이 시작되자 황포 2기 학생들이 장개석에게 보석금을 제안했고, 류는 167사단 정치훈련부 대령 겸 국장으로 임명됐다. 1938년 사단장 설위영이 마당전투를 지휘하지 못하여 마당성이 함락되고 사단 전체가 전멸하자 유씨는 귀향하여 농사일을 하게 되었다. 1939년 류는 군사학교 동급생들을 통해 장개석에게 중재하여 군복귀를 허락받았고, 75군 정치부 소장과 군사령관 대행을 역임했다. 육군은 제5전장에서 열린 노호수방전투에 참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