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동(1837~1909)은 말년에 향도, 향암, 일공, 오경작사, 보빙으로도 불렸다. 청나라 서학파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그의 '한학을 몸으로 하고 서학을 응용으로'라는 그의 제안은 서구화주의자와 초기 개혁주의자들의 기본 강령을 요약하고 요약한 것이었다. 장즈동(張志东), 증국판(曾國条), 이홍장(紅紅章), 좌종당(左種塘)은 청나라 말기의 '4대 명관'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