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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거처
데이비드 윌커슨
2000년 9월 4일
“너희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를 건축하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에베소서 2:22) 거처(거처)는 거처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에서 “거하는 곳”이라는 헬라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영구적인 거주지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나 건물에 사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서 사람 안에, 즉 그분의 백성의 몸과 마음과 영혼 속에 살기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는 그분의 성전, 거처, 영구적인 거처가 됩니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이 내 안에 사신다"고 자신있게 자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다른 사람이 없으며, 육체적인 거처도 없습니다. 수도도 없고(심지어 예루살렘도), 산 꼭대기도 없습니다. 그분은 구름 속에, 어둠 속에, 햇빛 속에, 해와 달과 별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물론 주님은 그분의 임재로 가득 차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안에 거하시며, 피로 씻겨진 마음은 그분의 영원한 거처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시나요? 우리가 우리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면, 그 순간 그분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며, 그리스도의 임재가 우리 존재를 가득 채웁니다. 더욱이 주님은 우리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고 이렇게 증거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과 내 아버지를 지키리라.” 그리하면 우리가 그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거하리로다”(요한복음 14:20-23)
잠언 8장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에 관한 영광스러운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시간에 따른 영원한 성약은 인류 가운데 살겠다는 그들의 계획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오래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은 의식을 얻으셨고 인류는 그들의 거처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그분이 택하신 백성의 몸과 영혼 속에 사시겠다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그 신비를 성경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설명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지혜이시라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니 예수는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니라” (고린도전서 1:30) >
잠언 8장에 언급된 지혜는 오직 예수님만을 가리킬 수 있으며, 30절에서는 지혜가 이렇게 말합니다. .” 이 구절이 예수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분은 오직 그분뿐이시며,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을 압니다. “주의 창조가 시작될 때, 태초에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내가 영원부터 있었느니라. , 태초부터 세상이 없었느니라. "내가 전부터 세웠느니라."(잠언 8:22-23)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기뻐하시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천국의 영광과 끝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기쁨은 예수께서 인류의 슬픔을 맛보기 전에도 있었고, 아직 성육신하지도 않았고, 세상의 트라우마를 겪지도 않았고, 배척당하지도 않았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죄를 비웃고, 조롱하고, 침을 뱉고, 아직 십자가를 겪지 않았고, 아버지의 얼굴이 숨겨지는 일을 겪어본 적도 없고, 죽음의 체험을 맛본 적도 없습니다.
나중에 신약성경의 계획이 나왔고, 이 계획에 따라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인간이 타락하면 구원자가 필요함을 아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새 계약의 중개자로 삼으시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당신은 육신이 되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제물이 되시겠습니까? 그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그들의 삶에서 그들을 악한 자의 세력에서 구원하시겠습니까?” p>
예수님은 이 끔찍한 전망을 충분히 이해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채찍질을 당할 것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미움을 받고 버림받을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 앞에 놓인 십자가를 보셨습니다. , 성경에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기를 기뻐하셨느니라 하시고 그 값을 계산하신 후에 이르시되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기뻐하오니 주의 법이 내 안에 있나이다
” (시편 40:8)
아들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거할 곳을 위하여 그가 예비하신 곳을 기쁘게 여기시며 사람 가운데 거하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8.:31) )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합니까? 하나님은 아직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은하계와 셀 수 없이 많은 행성들 중에서 작은 지구를 선택하여 그 위에 살게 하시고, 인간을 하나님의 거처로 선택하셨고, 우리가 바로 ‘그분께서 거하실 수 있는 곳’입니다.
내 설교의 초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대면하고 행복하며 끝없는 교제를 누리지 못할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 안에 살기를 좋아하십니다. (8:31) 그분은 “내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과 교제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거처가 되는 것을 기뻐하시나요?
나는 그가 미래를 확실히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저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주님께서 우리 각자가 복음에 어떻게 반응할지 이미 알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이제 나는 제한된 속죄를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정죄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3:15-17, 베드로후서 3:9) 그러나 만일 그분께서 우리의 이름을 미리 아신다면 우리가 우리를 위한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도 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이시며, 우리가 중국에 살든, 소련에 살든, 미국에 살든 마음속에 그분을 왕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내다보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가든, 아프리카 국가든, 다른 어떤 나라든, 그분은 우리 각자를 알고 계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날을 기억하시나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주님과 약속했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이것을 보셨고 당신을 기뻐하셨습니다. 당신이 어머니의 태에서 형성되기 전부터 그분은 당신이 그분을 받아들일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모태에서 이끌어 내시고, 제가 어머니 품에 있을 때 나에게 신뢰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나는 모태에서 당신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 내 어머니에게서 나를 낳으신 나의 하나님.”(시편 22:9-10) “주의 눈이 내 형질을 보셨고 주의 정한 날을 내가 살기도 전에 기록하셨나이다”(시편 139:16). 139:16)
당신이 아직 태아가 아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몸의 지체를 당신의 책에 기록하셨고, 당신의 아들 예수를 온전히 아셨습니다. 주소.
주님께서 여러분을 자신의 거처로 삼아 기뻐하시는 이유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신랑으로서 주님은 당신을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신부와의 친밀한 교제를 기대하십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 중 많은 부분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지체, 양, 처녀, 자녀, 종, 친구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가장 친밀한 표현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것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이사야 62:5) 당신은 당신이 연인과 약혼할 때, 당신이 결혼하고 마침내 결혼하기까지 며칠이 걸릴지 항상 셀 정도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원하셔서 아버지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포기하기로 동의하신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눈, 이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당신의 눈동자가 될 것이며 당신은 완전히 그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기뻐합니다.
당신의 신랑은 당신이 매일 골방에 들어와 그분 안에서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세상과 단절되어 사랑을 나누고 달콤한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조용히 너희를 사랑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기뻐하리라"(스바냐 3:17)
이제 당신의 처음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 당신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당신은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찾고, 그분의 말씀을 기쁨으로 읽고, 하나님의 가족에게 돌아와 그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그분을 경배하게 되어 기쁩니다.
주님 보시기에는 매일 여러분과 함께하는 것이 결혼식과 같습니다.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고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고 선언하십니다. else." ”
아내(그웬)와 저는 너무 사랑해서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항상 세 번씩 전화를 해요. 이렇게 결혼한 지 50년이 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당신과 어떤 사랑의 관계를 갖기를 원하시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2. 주님은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신비를 여러분과 나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진실한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한 마음을 전하고, 외부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또한 당신이 그분께 당신의 마음을 쏟아 붓기를 원하십니다.
살과 피의 관계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비록 들릴라에 대한 삼손의 사랑은 육욕적이었지만(사사기 16:4 참조),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그의 힘의 비밀을 말했고 그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기뻐하시는 것처럼, 당신도 당신의 신부가 될 뿐만 아니라 당신의 가까운 친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의 말을 열어 다른 신자들이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들을 당신에게 드러내시는 그분의 능력으로 인해 당신이 그분께 가까이 있기를 기대하십니다. (요한복음 15:15)
그분은 하나님의 본성의 가장 깊은 신비를 여러분과 나누기를 갈망하십니다. 그분은 “의로운 사람은 친밀함을 얻습니다.”(잠언 3:32)라고 말씀하십니다. , 주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그렇지 않았다면 그분은 중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7)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당신에게 친밀하게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이 세상과 당신의 삶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가? 새 언약의 영광과 그분의 이름의 아름다움? 희생. 더욱이 그분은 당신이 당신의 모든 필요와 어려움, 고통과 실패, 희망과 소망, 꿈과 악몽을 그분과 함께 나누기를 기대하십니다.
3. 신부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날마다 내 문을 바라보며 내 문설주 곁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잠언 8:34)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와 함께 사는 그 사람은 내가 하는 모든 말에 의지하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듣기 위해 문 앞에서 기다리며, 내가 그에게 하는 모든 말은 그의 눈에 기쁨이 됩니다. "
그분의 신부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에 응답해야 합니다. "나의 비둘기야, 네가 바위틈, 바위틈에 있다.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여라. 네 목소리를 들으라 네 목소리는 부드럽고 얼굴은 아름답구나”(야고보서 2:14)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을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기뻐하며 증언합니다. “내가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시편 119:16) “주의 증거는 나의 것이니 기뻐하는 자는 나의 모사가 되시나이다.” (시 119:24)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을 즐거워하리이다.”(119:47)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오니”(119:77) 이 구절의 히브리어 의미는 “내가 주의 법을 기뻐합니다. ”
저는 잠언 8장 34절의 위의 두 문장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내 안에서. 문설주를 바라보며” 우선 무엇을 합니까? 여기에 언급된 "출입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시편자가 우리에게 주는 대답은 "내게 의의 문을 열라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118:19)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의를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신자는 주님 앞에서 의로운 길을 걷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는 자신을 거룩하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는 모든 계시에 흥분합니다. “나는 진리를 원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줄을 내가 아노라." 이것은 책이나 설교 카세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주님께서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실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
매일 아침 신실하신 성령께서 오셔서 이 신자를 만나시며 그를 부드럽게 초대하십니다. “친구여, 오늘은 하나님의 정의에 관한 새로운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둘째,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다"는 무슨 뜻인가요?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떠는 모든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 문장은 이사야서 6장에 나오는데, 선지자가 성전 문지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사야가 성전 문 앞에 섰을 때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찬송가가 하늘에 울려퍼지더니 순간적으로 하늘에서 강력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 그 소리가 크고 분명하여 모든 것을 진동시켰으며 "외치는 자들의 소리로 인해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 연기가 가득한지라"(이사야 6:4)
이렇게 큰 소리가 났습니다. 그 음성이 이사야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의 죄를 깨닫게 하여 이르되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였도다(6:5) 두려움.
이사야는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예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열망하며, 말씀이 오면 기꺼이 죄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하고 회개하고 내 말을 듣고 떠는 자들을 내가 돌아보나니”(66:2)
우리는 창세 전부터 주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거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때 그분은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의 비밀을 우리와 공유하십니다.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기쁨이며 그분의 의에 대한 계시를 받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구하고 그분의 말씀에서 나오는 계시를 기뻐합니다.
당신의 삶이 이 설명에 부합합니까?
성경에는 주님께서 우리가 그분의 거처가 되기를 기대하신다고 분명히 나와 있는데, 당신은 그분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습니까? 그분은 당신의 삶을 당신과 함께 보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과의 친밀감이 커졌습니까? 아니면 종종 그분과 거리를 두십니까?
당신의 신랑은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이고, 당신에게 마음을 열고, 매일 당신과 달콤한 교제를 갖기를 원합니다. 그분은 당신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당신의 삶을 형성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눈물과 친밀함 때문에 당신은 그 사람의 마음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그에게 하는 말은 신부가 하는 말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내가 그 그늘 아래 앉아서 그 열매를 맛보았나이다. " "내게는 달콤하도다."(아 2:3) "나로 주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네 음성을 듣게 하소서."(2:14)
창세 전에 주님께서 생각하신 것은 그러나 이제 관계를 즐길 시간이 되자 당신은 TV를 보고, 쇼핑하고, 인터넷을 서핑하고, 정원을 가꾸는 등의 시간을 주님을 소홀히 했습니다. 당신은 주님과 가까이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당신은 주님과 함께 있기에 지친 신부의 마음에 주님이 거하실 것이라고 믿습니까? 왜 그분은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분과 이야기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는 사람의 마음 속에 계속 사시겠습니까?
이것은 심각한 경고입니다. 주님은 그분을 무시하는 사람들 안에 거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은 동의하지 않고 "그러나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멀리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몇 주 동안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읽지 않고, 개인적으로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갖지 않는다면, 당신이 다음과 같이 선언한 것보다 사실이 더 크게 말할 것입니다. “나의 행동은 내가 예수님과 나의 가족, 직업, 개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관심사가 더욱 중요하다.”
짠 땅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히브리서 2:3)라고 분명히 경고합니다. 주님을 등한히 하면 그 대가는 매우 크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주어진 구원은 소금으로 환원될 것입니다.
에스겔 47장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이 광야를 흐르면 가는 곳마다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더 많이 흐를수록 더 넓어지고, 더 깊이 흐를수록 더 깊어져서 헤엄칠 수 있는 물이 됩니다.
“이 물은 동쪽으로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고 바다까지 이르리니, 나오는 물은 염해로 흘러가서 그 물을 달게 하리라.” 텍스트가 치유되었습니다).
이 강의 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 것이다. (에스겔 47:8-9)
이 생명의 강은 복음의 전파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열두 제자를 통해 시작되어 널리 퍼졌습니다. 사도 바울, 그리고 그의 개종자들이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에 그 복음은 곧 전 세계로 퍼질 것입니다. 이제 수천 명의 하나님의 종들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고 있으므로 이 강은 이제 헤엄칠 수 있는 물이 되었습니다. 강물은 모든 것이 사는 곳에 이르느니라.”(47:9)
갈보리에서 희생을 치르신 이후로 지금까지 강물은 흐르고 있으며, 진리를 듣고 받아들인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것을 얻었습니다. 치유된 주님의 진리는 그들을 태만함과 게으름과 무관심에서 깨웠습니다. 이제 그들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분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성령님, 제가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고, 하나님 마음의 비밀도 받아 치료받았습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당신은 하나님의 치유의 물에서 수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강물이 당신 옆으로 흐르도록 놔두나요? 물이 흐르지 못하는 사막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목해 주십시오. "그러나 진흙탕과 습한 곳은 고침을 받지 아니하면 염지가 되리라" (47:11) 주님을 무시하고,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성경을 읽지 않는 죄를 지었습니다. 여러분은 죄를 책망하는 설교를 듣고 마음이 격분했지만, 예전으로 돌아가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 이제 당신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사실 당신은 당신에 대한 주님의 기대를 망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소금이 되리라'고 한 말은 무슨 뜻인가요? 그것은 완전한 황폐함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사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바닷물이 가득한 호수이며 그 안이나 주변에는 어떤 식물도 자랄 수 없습니다. .
이렇게 진흙탕, 외로운 마른 늪이 되었나요? 당신의 삶이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일상은 공허하고, 지루하고, 외롭나요? 어쩌면 당신은 소금땅으로 전락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매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여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수로 치유받았지만 당신은 명목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
이 설교가 당신을 흥분시켰거나 확신을 주었다면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기에 너무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치유의 강이 흐르면 죽은 자도 다 낫는다.
신약전서가 기록될 당시,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은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무시하고, 이 사람들이 점점 미지근해지거나 완전히 무관심해져서 결국 신앙에서 멀어질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은 양이 길을 잃거나 제 갈 길로 가면 예수님께서 그 양을 쫓아 우리로 데려가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만물을 낫게 하는 맑은 물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이 물은 바다까지 닿고, 나오는 물은 소금 바다로 흘러가서 달게 하리라. (에스겔 47장 8절) 치료하는 하나님의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그 주위의 풀이 무성하여 여기도 풀이 되고 저기도 작은 풀이 자라서 온 동산이 무성하게 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원하시며, 그분은 여전히 당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사실, 당신은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오늘 다시 삶을 살 수 있으며, 그분께서는 낭비된 모든 세월을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메뚜기가 먹은 대로 네게 갚아 주리라”(요엘 2:25)
당신은 여전히 그분의 거처가 될 수 있고, 그분의 계시를 받고, 그분의 신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뒤로: 당신이 그분을 무시하고 여러 가지 일로 바쁘고 그분과 거리를 두었음을 인정하십시오. 그분이 다음과 같은 말로 당신을 부르셨을 때 당신은 듣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비취시리라”(에베소서 5:14)
지금 그분을 부르십시오. , 하나님, 제 영혼을 깨우시고, 저를 잠에서 깨우소서. 저는 변화되기를 원하며, 주님, 제 안에서 역사하실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의 새로운 손길을 갈망합니다.
”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잊어버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여,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이니 내가 너희의 타락한 것을 고치리라.”(예레미야 3:12-14. , 22)
이사야는 더욱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가장 높고 가장 거룩한 곳에 내가 통회하고 겸손한 심령을 가진 자와 함께 거하리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영을 소생시키려 함이로다 내가 영원히 싸우지 아니하리라. 내가 영원히 화를 내며 내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며 멀리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주고 그들을 고치리라”(이사야 57:15-19) "내 딸아, 나는 한때 너에게 화를 냈고 너를 외롭고 공허한 삶을 경험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악마가 너를 파괴한 모든 것을 복원하고 싶다."
당신의 삶은 다시 정원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하기에 너무 늦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새로운 시작을 창조하시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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